보물섬 남해 여행/ 상주은모래비치/ 서포 김만중 선생 유허와 노도/겨울여행

2023. 12. 31. 13:47문화탐방(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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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고 상쾌한 바다내음을 맡으며 힐링을 즐기는 보물섬 남해로 여행을 떠나 보세요

남해 상주은모래비치

 

은은하게 반짝이는 고운 모래, 손바닥 사이로 촤르르륵 빠져나오는 은모래에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상주은모래비치.

 

 

이성계의 소원을 들어준 덕분으로 얻은 이름, ‘금산’.
이 금산의 절경을 긴 병풍으로 삼은 상주은모래비치는 고운 모래가 펼쳐진 드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인 사시사철 언제 가더라도 아름다운 은빛 해변입니다.

남해읍에서 남쪽으로 21떨어진 이곳은 맨발로 닿는 모래의 감촉이 좋은 솟아 해마다 여름이면 100만에 달하는 여행객들이 찾는 이곳은 2㎞에 이르는 반달형 백사장 경사도 완만한 데다 수온도 높아 가족들의 피서지로도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은빛 백사장과 쪽빛 바다가 어우러진 상주은모래비치

잔잔한 파도와 은빛 백사장, 쪽빛 바다가 어우러진 상주은모래비치는 그 자체로 초록빛 호수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풍광에 따스한 기후까지 더해져 겨울 바다의 낭만을 누리기에도 손색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수에 여수 밤바다가 있다면 남해엔 포크 가수 둘다섯이 부른 밤배가 있습니다. 상주은모래비치 입구에는 가수 둘다섯의 밤배노래비가 있으며, 밤배뿐 아니라 긴 머리 소녀’, ‘눈이 큰 아이등 둘다섯의 대표곡 10곡을 들을 수 있도록 해둬 남해여행에 소소한 낭만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마치 부드러운 비단 위를 걷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키는 상주은모래비치의 백사장은 160,000인데 백사장을 둘러싼 송림의 면적 또한 8916에 달하다 보니 해수욕 대신 솔향 아래서의 휴식을 즐기는 이도 많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풍광 때문에 캠핑과 갯바위 낚시를 즐기러 오는 발걸음도 줄을 잇습니다.

특히 캠핑객이 즐겨 찾는 상주야영장은 은모래비치 공영주차장을 지나 하천을 따라 들어오면 보인다. 유료 오토캠핑장과 야영공간을 운영하는 이곳의 관리는 상주면 번영회(055-863-3573)에서 하고 있습니다. 밤이면 파도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낭만과 사색에 젖어들 수 있고, 개수대와 샤워장 등 부대시설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어 이미 캠핑 성지로 환영받고 있습니다.

상주은모래를 찾는 숱한 이유 중 하나는 단 하나의 소원만큼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금산 보리암을 곁에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그 역시 숱한 이유 중 하나일 뿐, 상주은모래비치는 늘 많은 이들의 애정과 관심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남해해변의 고전입니다.

 

여름이면 서머페스티벌,, 겨울이면 해맞이 축제

여름이면 서머페스티벌,, 겨울이면 해맞이 축제로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이 되어주는 이 풍요의 바다는 나날이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긴 전통의 야채핫도그도 반갑고, 곳곳의 귀촌인들이 빚어낸 감각적인 감성 카페도 인스타명소로 자리 잡았으며, 오랜 시간 상주를 지켜온 주민들이 운영하는 식당들도 반갑습니다.

이야말로 아름다운 제빛을 잃지 않으면서 세월과 공존하며 변화를 추구하는 이 해변을 계절마다 찾아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서포 김만중 선생 유허와 노도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글로, 문학으로 승화시켜 온 산 증인!

 

 

남해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무인이 이순신 장군이라면, 문인으로는 서포 김만중이 아닐까?
상주면 벽련마을에서 나룻배로 건너가면 닿을 수 있는 섬, 노도로 유배되어 온 문인 김만중은 두고 온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글로, 문학으로 승화시켜 온 산 증인입니다.

남해 노도 구운몽

한글로 쓰인 소설 구운몽사씨남정기의 저자이자 수필집이자 평론집인 서포만필의 주인공인 김만중이라는 이름은 국문학 역사에 있어 우리 한글을 향한 깊은 애정이자 두고 온 그리움에 대한 진한 애환이자 혈혈단신 오로지 글쓰기에 전념한 채 버텨온 인간극복의 상징이기도 하겠습니다.

남해 노도 사씨남정기

 

새벽빛을 닮은 맑은 연꽃이란 뜻을 지닌 벽련마을. 이 마을은 벽작개 혹은 백련이라 부르기도 했다. 행정상 벽련마을에 속하는 문학의 섬, 노도는 그 자체로 고고하게 피어오른 크다 큰 연꽃을 닮았습니다.
벽련마을 선착장에서 12명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나룻배 역할을 해주는 도선을 타면 5분이면 당도하는 곳, 노도는 그야말로 손끝에 닿을 듯, 폴짝 뛰어오르면 순간이동 할 것 같은 아련한 거리의 유인도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처절한 외로움을 겪었으리라.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뭍을 두고, 벗어날 수 없는 유배객의 생이라니. 서포 김만중은 1689년부터 3년간 남해 노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배를 젓는 노를 많이 생산했다고 하여 노도라 불린다고 하는 전설 또는 섬의 생김새가 삿갓을 닮았다 하여 삿갓섬이라고도 불리는 노도. 실제로 가보면 붉은 동백꽃 군락이 가장 인상적인 이곳 노도는 멀리서 보면 금산, 호구산, 설흘산 아래 포근히 안겨 있는 형상입니다. 조선 후기 정치가로서 소설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대문호 서포 김만중의 발자취가 서포유허비에 남아 있습니다.

남해 노도 서포문학관

 

창망한 바다 한가운데 한점 신선의 섬 노도는 김만중 선생이 숙종 15년(1689)에 위리안치되어 불후의 국문소설 구운몽을 집필하시고 동 18년 56세의 일기로 서거하셨다고 새겨져 있는 유허비 뒷면의 글을 읽노라면 처연해지기도 합니다. 이곳 노도는 문학의 섬으로의 긴 채비를 마치고 정식개장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남해 노도 작가창작실

이곳 노도는 문학의 섬으로의 긴 채비를 마치고 정식개장만을 앞두고 있다. 2011년부터 시작한 노도문학의 섬 조성사업은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서포의 문학정신을 결합한 관광자원 개발 사업으로 상주면 양아리 노도 면적 16%인 해당하는 1만 9350평 부지에 서포문학관, 민속체험관, 작가창작실, 서포 초옥, 야외전시장, 생태연못 등을 두고, 문학애호가들과 걷기, 애호가들의 두드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